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서울, 종로구 • 문화

“여유 속 특별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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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옥 위에 한옥이 앉혀진 모습은 당연 건축을 전공하는 나에겐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거기다 비스듬하게 놓여 있는 거며, 다른 동의 건물도 반듯하지 않고 비틀어져 배치된 모습이 어딘가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연스러움이 묻어나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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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타고 올라가 마주한 광경은 안과 밖의 대비가 뚜렷했다. 어두운 벽돌과 그렇지 않은 밝은 내관의 마감재, 도로에 완전히 밀착되어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외관과 중간을 비워내어 다양한 활동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준 내부 중정, 정돈되지 않은 외관과 달리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잘리고 정리된 배치가 더욱이 이곳의 구석구석을 탐험해보고 싶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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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내부를 경험하기도 전에 이곳은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아님을 직감했다. 공공이 운영한다고 하기엔 좁았고, 만약 그렇다 한들 절대 이런 퀄리티의 건물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기업이 운영하는 공간이었고, 현대카드를 소지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도 달에 몇 번, 이렇게 횟수가 제한되어있었다. 그래도 입장료는 없으니 여러 번 들러 공간을 경험하기엔 충분하였고, 카드도 있었으니 맘껏 공간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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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첫 경험은 꽤 담백했다고 할 수 있다. ‘담백하다’는 음식에 주로 쓰이는 단어다. 공간에 쓰는 단어로 설명하자면 평면이 깔끔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담백하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어딘가 어수선한 것 하나 없었고 그렇다고 너무나 정갈해서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 적당히 덜어내고 적당히 채워, 욕심 없이 구성된 내부가 단어 그대로 ‘담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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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 너머로 보이는 한옥과 그것을 바라보게 배치된 의자, 집에 사용될 정도로 좁은 폭을 가진 계단과 다락방을 연상시키는 3층은 오랫동안 예술에 몸을 담근 디자이너의 집 같았다. 그곳에는 그가 그동안 수집했을 것 같은 디자인 계열의 책들이,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책부터 구한다 한들 리셀 가격이 붙어 구매할 엄두도 못 내는 책들이 많았다. 그곳에서 나는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의 작품집을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책을 읽었고, 이곳을 방문한 다른 이들은 무슨 책을 보는지 궁금해 한참을 돌아다녔다. 그들은 저마다 관심 있는 책에 빠져 집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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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왜 현대카드에서 입장료도 받지 않고 고객들에게 무료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그리고 왜 하필 도서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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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만큼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우리를 덮치고 있기에, 우리는 그 정보를 선별해내는데 바빠, 정작 여유를 가지며 생각하는 시간을 사치처럼 여기게 되었다. 정말 중요한 건 후자인데 말이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나타난 이 공간은 디지털 정보화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공간이었다. 책을 찾아보고 꺼내어 읽는 아날로그 경험이 여유롭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쉽게 구할 수 없는 책과 대출이 불가능한 시스템이 더욱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서 이곳의 경험은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함'이 되었고 그것이 도서관의 형태로 나타나 고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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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현대카드 소지자들은 무료로 이곳을 경험할 수 있으니 기존의 고객도 잡을 수 있고, 이곳을 경험하고 싶은 이들은 카드를 발급 하게되니 기업에서 손해 볼 장사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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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은 기업과 브랜드가 공간에도 신경을 쓰고 있지만, 이곳이 생기기 시작한 2012년에는 SNS로 인증샷을 찍으며 도장깨기 했던 이들이 거의 없었으니, 그들의 전략은 대단하고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그 가치를 좋게 본 결과 이곳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말고도 다른 동네에 다른 테마를 가진 라이브러리가 생겨났다. 고객들 입장에선 당연히 좋은 서비스고 공간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정말 좋은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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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다양한 라이브러리 중, 강남의 현대카드 트레블 라이브러리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라이브러리를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더 다양한 현대카드 도서관이 곳곳에 생겨난다면, 잊고 있었던 여유로움과 생각의 시간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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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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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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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31-18
매일 12:00 - 21:00 (월요일 휴무)
화요일: 오후 12:00~9:00
수요일: 오후 12:00~9:00
목요일: 오후 12:00~9:00
금요일: 오후 12:00~9:00
토요일: 오후 12:00~9:00
일요일: 오후 12:00~6: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