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특별시건축상’은 시민 삶의 질을 향상시킨 건축물을 발굴합니다. 27년간 진행된 서울시 건축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인 만큼, 믿고 경험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대방청소년문화의집

“일상을 비일상으로 대피시키다” - 대방청소년문화의집
-
5월 31일, 06시 40분경, 서울 전역에 울려 퍼진 사이렌은 굳게 닫힌 창문을 뚫고 들어와 지역민을 전부 깨웠다. 창문을 열자 들려오는 두 번째 방송. 어린이, 노약자를 우선 대피하라 명령한다. 안내 방송이 끝나자 열리고 닫히는 이웃집 현관문들. 불안은 극대화된다. 부리나케 밖으로 나간 거리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지인과 통화하는 사람, 벌어질 일을 예상이라도 한 듯 한 보따리 짐을 들고 대피소로 향하는 사람, 나처럼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상황 파악하는 사람 등 다양했다. 행동은 달랐지만, 표정은 불안으로 같았다.
새벽녘부터 울린 경계경보는 다행히 오발령이었지만, 우리가 잊고 있던 휴전국의 불안전성을 일깨웠다. 동시에 대피소라는 공간 자체에 주목하게 했다.
-
도시의 기반 시설인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는 도시 기능 유지에 필요한 물리적 시설을 의미한다. 도로, 공원, 학교, 공공청사가 그렇다. 대피소는 도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공간이 아니다. 어디서도 대피소를 별개의 공간, 기반 시설로 분류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시를 성립하는 전제 조건이 ‘평화’가 기반이 되어 ‘문명’이 발생하는 ‘곳’이라면,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게다가 재난 위기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닌 만큼, 이제는 대피소가 분단 국가를 넘어 전 도시에 필수로 갖추어져야 하는 기반 시설 중 하나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서울에는 이미 많은 대피 시설이 있다. 지하철과 공공청사가 대표적이다. 이곳들은 위치와 건물의 성격으로 대피소의 호칭을 가지지만, 주목적은 아니다. 벙커는 폭격에 대비하기 위해 지하에 매설되어 오롯이 대피소 역할만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
‘대방청소년문화의집’은 군용 벙커를 리모델링했다. 군 기능을 상실하면서 와인 창고, 공원 관리용 자재 창고로 쓰이다가 오늘날 변화를 맞이한다. 벙커 주변은 10여 개의 학교가 자리한다. 그만큼 청소년을 위한 공간 수요가 넘친다. 벙커가 특수한 환경임을 고려하면, 이곳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창의적 공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벙커는 아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스포츠, 창작활동, 교육과 휴식을 지원하는 청소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공간은 크게 세 층으로 나뉜다. 1층은 스포츠 벙커로 VR 존과 스포츠 존, 2층은 미래 벙커로 청소년의 꿈을 지원하는 미디어, 멀티, 스포츠 코트, 3층은 유스 벙커로 휴식 공간이 있다. 휴식 공간 한편에는 식생을 가꿔 공간의 삭막함을 덜어낸다. 기존의 층을 허물고 다락을 매단 덕분에 세 층을 이어주는 입체 광장이 만들어졌다. 거기에 강관과 조명을 가로로 길게 설치하여 대방산 지하 공간을 시원하고 답답하지 않게 해준다.
-
대피소는 필요하지만, 사용되지 않을 땐 방치된다. 기반 시설과 군 시설이라는 대형공간은 평소 경험하기 힘든 스케일과 자체의 구조미를 그대로 드러낸다. 일반적인 공간과 차별화된 공간 경험,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대피시키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며 성장하는 발판이, 우리에게는 분단국가임을 상기시키며 평화를 위해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대방청소년문화의집’은 대피소의 공간 활용방안과 주변 도시와 상생하는 좋은 예를 보여준다.
-
리모델링 : 조진만건축사사무소( @jo_jinman_architects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서울 동작구 여의대방로36길 71
매일 09:00 - 21:00 (월요일 휴무)
김근태 기념도서관

“켜켜이 쌓인 땅, 켜켜이 나열된 건물” - 김근태기념도서관
-
서울로 향하는 북측 관문인 도봉동은 도봉산과 수락산이 만나 형성된 골짜기에 자리한다. 중랑천이 흐르고, 이를 갈랐던 군사시설의 흔적도 보인다. 지역민의 터전인 아파트 단지와 주택, 그 반대편에는 이방인인 등산객을 위한 음식점의 행렬. 자연의 경이로움과 시간의 흔적, 삶터와 놀이터의 조화가 켜켜이 쌓인 이곳에서 그 켜를 나열하는 듯한 형상의 건물은 눈에 띈다.
김근태기념도서관은 도봉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하여 산을 배경으로 우두커니 서 있다. 대지는 대로변과 사선으로 맞닿아있지만, 건물은 도로와 직접적으로 면하지 않고 조금씩 뒤로 물러나, 사람들을 자연스레 안으로 끌어들인다.
크지 않은 이형의 땅은 건축 행위에 많은 제약을 준다. 단순한 도서관(Library)을 넘어 민주주의자 故 김근태 선생을 기억하는 기록관(Archives)과 박물관(Museum)의 기능 또한 담아내야 하는 ‘라키비움(Lachiveum)’은 낭비되는 공간 없이 각 공간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좁은 대지에 해당 프로그램을 알차게 넣기 위해 이곳은 격자 형식으로 공간을 구성했다. 도서관, 기록관, 전시관 순서로 실을 배치하되, 한 축은 같은 공간에서 이동을 담당하며, 다른 축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복도 역할을 한다. 수직 축은 수직 동선을 만들어 각층을 연결한다. 덕분에 생겨난 사이 공간에서는 수락산의 산세를 바라볼 수 있으며, 중정을 통해 프라이빗한 외부 공간도 마주할 수 있다.
내외부가 반복되어 켜켜이 쌓이는 모습은 공간에 깊이를 주고, 이는 외부에서도 쉽게 보인다. 뒤로 갈수록 낮아지는 건물과 옆으로 한 칸씩 돌출되는 모습은 리듬을 만들고 각 실은 독립적인 입구를 가지게 되어 쉽게 건물에 드나들 수 있다.
계단 밑 버려지는 공간도 서가로 활용하고, 층높이를 높게하여 공간을 넓힌다. 옥상은 계단식 테라스를 만들어 낭비되는 공간 없이 알차게 건물을 사용한다.
-
켜켜이 쌓인 故 김근태 선생의 업적이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을 주듯, 이를 담아낸 건물은 공간과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일까, 켜켜이 쌓인 땅과 시간의 흔적을 담은 도봉동과 어울린다.
-
건축 : 여느건축디자인 건축사사무소 ( @yeoneu_architects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서울 도봉구 도봉산길 14
평일 09:00 - 20:00
주말 09:00 - 17:00
월요일, 공휴일 휴관
중랑망우공간

“회상과 성찰” - 중랑망우공간
-
추모 공간은 회상의 장치로 비석, 무덤, 유골함을 통해 일련의 사건과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과정에서 떠오른 기억은 자연스레 자기 모습과 겹쳐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종교 공간처럼 성찰할 수 있는 추모 공간은 더욱이 도시에서 중요한 시설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죽음에 부정적 시선이 기피가 되어 추모 시설은 우리 삶과 멀어지게 되었다.
-
서울 주택난이 심해지고 외곽에 있던 공동묘지는 망우리로 이장되었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역사 속 인물이 이곳에 묻혔고, 망우리 공동묘지는 중요한 장소성을 띠게 된다. 당시에도 공동묘지는 혐오시설로 간주하였지만, 더 이상 이장할 장소가 없어 도시와 어색한 만남이 시작되었다. 공원화를 통해 묘지와 도시가 어우러지도록 했고 이름도 공동묘지에서 역사문화공원으로 바꿔,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했다. 덕분에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보이는 묘지는 쉽게 볼 수 없는 값진 광경이 되었고 2013년 서울시 미래 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의 구심점에 자리한 ‘중랑망우공간’은 벽으로 막힌 면적보다 개방된 면적이 더 넓어 보인다. 그래서 건물의 형태가 선명하지 않아 내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막힘없고 열주 사이로 솟아난 덩어리는 리듬을 부여해 적막을 깬다.
수평으로 길게 놓인 슬라브와 이를 받치는 기둥. 기둥은 얇아 존재감이 강하지 않고 일렬로 나열되어 수평성을 강조한다. 열주가 만들어내는 복도를 걸으면 수공간을 마주하고 그곳에 비친 하늘과 소나무를 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
무덤에는 아무것도 없다 말한다. 몸은 썩어 사라지고 영혼은 죽음과 동시에 극락, 천당에 가니 남겨진 건 남은 자들의 기억뿐이라고. 그래서 추모 공간은 죽은 자가 아닌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공간이며, 그곳에서 고인을 기억하고 속에 비친 자신을 되돌아보며 성찰한다. 도시화하고 인공적 물질이 자연을 내쫒아 삭막해진 우리 주변 공간에서 이런 공간은 절실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산책로와 연결되어 사람들을 자연스레 이어주고 도시와 허물없이 공존하게 하는 ‘망우역사문화공원’과 ‘중랑망우공간’은 값지다.
-
건축 : 정재헌 ( @mono.um07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서울 중랑구 망우로91길 2
매일 08:00 - 20:00
안중근 의사 기념관

“상징으로서의 건축” - 안중근의사 기념관
-
건축은 상징과 제품으로 이분화된다. 상징으로서의 건축은 역사, 전통, 맥락, 장소와 같이 인문학적 요소에 기반을 두고, 제품으로서의 건축은 형태, 재료, 구조와 같이 물질적인 요소에 중점을 둔다. 어느 것 하나 우열을 가릴 수 없고, 양자택일할 수도 없을 만큼 두 가지가 상호보완하며 건축을 이루지만, 건물의 용도에 따라 비중은 달라질 수 있다.
기념관은 전자의 비중이 큰 건물이다. 기념관은 기념할 대상이 정해져 있기에 관련된 사건, 업적이 맥락이 되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바를 공간을 통해 전달한다. 만약 공간이 매개체가 되지 않으면 관람객은 전시장의 작은 글씨에만 의존하게 되고, 기념관은 미술관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건물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공간을 어떻게 상징화하여 관람객에게 지속적으로 기념 대상을 상기시키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간을 둘러보게 할지가 기념관의 핵심인 셈이다.
-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자리한 남산 중턱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 신사 터였다. 일본이 천황 이데올로기를 강제로 주입하여 민족정신을 말살하려 했던 장소이며, 그곳에 그와 함께 한 단지동맹 12명을 상징하는 건물 매스가 땅을 즈려밝고 굳건히 서 있다.
땅을 건물이 들어설 체적만큼 덜어내어 건물 1층은 지하에 위치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경사로를 따라 땅 깊숙이 들어가 건물에 진입하고 낮아지는 땅과 함께 높아지는 옹벽에는 그의 유목과 어록이 새겨져 있다. 벽은 매끈하여 관람객과 어록, 기념관을 서로 겹쳐 보이게 한다. 지상에서는 높지 않았던 건물이 입구에 다다를 즈음이면 벽과 함께 엄청난 높이로 서 있어 관람객을 긴장시킨다.
문을 열고 메인 홀에 진입하면 높은 천장고와 넓은 폭을 가진 대공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 태극기 혈서가 자리한다. 넓은 공간을 압도하며 우리를 침묵하게 하는 두 요소는 전시를 보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관문인 동시에, 층마다 이동 동선에 맞게 뚫린 창을 통해 수시로 보여주어, 관람객에게 기념의 대상을 상기시킨다.
건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투명유리로 감싸진 계단실이다. 전시의 마지막인 이곳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으로 얻게 된 대한민국의 평화로움을 남산의 전경을 통해 보여주며, 관람의 긴장을 풀어준다.
-
기념관은 낮에는 신사터를 짓밟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밤에는 어두운 등산로를 밝혀 안도감을 준다. 안중근 의사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 머물며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
건축 : 디림건축사사무소 ( @dlimarch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서울 중구 소월로 91
매일 10:00 - 17:00
한국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

“모두의 공간” - 경동교회
-
본디 교회는 종교인을 넘어 일반인도 쉽게 방문하는 공간이었다.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교회는 오늘날 붉은 LED와 스테인드글라스 시트지로 외관만 흉내 내기에 급급했고, 일반 건물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교회는 종교건축으로서 가치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자신에게 집중할 공간을 찾는 이들이 굳이 교회를 방문할 이유가 없었다.
경동교회는 십자가가 없고 스테인드글라스 시트지가 유리에 덕지덕지 붙어있지도 않다. 문과 창 몇 개가 전부인 1층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개구부가 없어, 이곳은 교회로 보이고 싶은 욕심이 없는 듯했다.
-
건물 앞 작은 마당은 벽으로 둘러싸인 느낌을 주기에 건물 안에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없어지고, 건물의 용도는 간판을 보기 전까지 짐작하기 힘들어 일반인도 그곳에 발을 들일 용기가 생긴다.
자연스레 마당을 경험한 사람은 폭이 넓은 계단을 오르고, 벽에 붙여진 모자이크 타일을 감상한다. 건물 뒤편, 본당 입구를 마주하게 되었을 땐, 비대칭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좌우대칭의 건물 형태가 사람들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성스러운 공간에 진입하기 전, 옷매무새를 다듬으라 말하는 것 같다.
본당은 벽돌로 마감된 외부와 달리, 노출 콘크리트로 장엄함을 극대화한다. 대공간을 형성하기 위해 드러나는 구조는 기둥, 보가 일체화되어 유기적인 형태를 띠고, 이것이 반복되어 공간에 리듬을 부여한다. 본당의 끝엔 십자가와 오르간이 대칭을 깨기 때문에 비대칭과 리듬은 긴장된 마음을 풀어준다. 천장 곳곳, 십자가 위에 뚫린 작고 큰 개구부에서만 빛이 들어와 사람들은 십자가에 집중하게 되며, 자연스레 종교인은 그들의 믿음을, 일반인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확인한다.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사거리에서 한 블록 물러난 주거지는 쉼 하나 없이 들어선 건물과 DDP에서 쏟아지는 활기참만 가득해 거주민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교회의 열린 공간은 숨통을 틔게 하고 혼잡한 도시에 대응하는 간결한 외관은 거주민의 부담을 줄여주며, 본질에 집중하게 하는 내부 공간이 잡생각을 지워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경동교회는 역동적인 도시에 자리하여 종교인을 넘어 일반인도 위로받고 재충전할 기회를 제공하기에, 이곳은 종교건축이 가져야 할 태도를 잘 보여준다.
-
건축 : 김수근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서울 중구 장충단로 204 경동교회
코오롱원앤온리타워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 것” - 코오롱 원앤온리 타워
-
도시에서 건물이 빼곡할수록 건물은 가로에 면한 입면만 보인다. 서구 도시에서 대부분의 건물은 우리나라와 달리 맞벽으로 건축하기에, 더더욱 거리에 나열된 건물은 파사드의 연결로 읽혔다. 이는 곧 건물의 정면이 건축물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파사드 다자인은 커튼월, 이중 외피, 루버 등 그 종류가 다양해졌다. 대기 중 오염 물질을 방지하고, 내부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며, 대류 현상으로 건물의 온도를 낮추는 목적도 있지만, 건물의 첫인상을 결정하게 된 파사드 디자인은 건물 자체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데 그 목적이 더 커졌다.
-
이 건물은 코오롱의 연구개발시설이다. 코오롱은 섬유, 화학, 지속 가능한 기술부터 스포츠 및 기성복 패션 시장까지 다양한 범위에서 활동한다. 그 중, 제품을 생산하기 이전에 제품의 재료를 연구하고 가능성을 탐구하며 유의미한 성과를 내야 하는 연구개발은 그 자체가 회사의 자산이며, 이는 외부인에게 공개되어서는 안 될 정보가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로비를 제외하곤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능하다.
서울시가 마곡지구를 신도시로 개발할 적에, 녹지 축을 따라 자연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과 함께 기업의 연구, 기술, 경공업 분야를 밀집시켜 새로운 교차 시장을 창출하려는 목표도 있었다. 그런 목표 아래, 마곡 지구에 처음 들어서는 코오롱의 연구개발시설은 그 주변으로 들어설 건물의 본보기가 되어야 했으며,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건물인 만큼, 파사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줘야 했다.
빛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 설치된 주 출입구의 파사드는 기능과 함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코오롱은 패션 분야로 쉽게 인지되고, ‘코오롱 스포츠’는 차별화된 원단으로 제품 성능을 강화한다. 브랜드의 특징을 살려 섬유 직조 패턴으로 파사드를 구성하고 그 재료는 그들이 개발한 직물을 사용하여 내구성을 높였다. 덕분에 내부에서 자연채광과 자연 바람의 접근성이 좋아졌고 외부인은 코오롱의 기술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
파사드가 중요한 디자인 전략으로 사용됨에 따라 생겨나는 부작용도 있다. 건축에 대한 관심이 공간을 둘러싼 외적인 부분에만 집중될 뿐, 정작 공간 자체에는 관심이 없어지는 경우다. 다행히 코오롱 원앤온리 타워는 그렇지 않았다. 건물의 로비가 전체 공간을 대변해주는 만큼, 다양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었던 로비는 이곳이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 공간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그래서 코오롱 원앤온리 타워는 파사드에만 집착하는 다른 건축물과 결이 다르다.
인스타그램에 건물의 외관을 확대하여 찍은 사진이 건축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곤 한다. 일반인과 건축학도에게 건축은 외관 디자인이 전부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것이 감싸는 내부 공간이며 더 많은 이들이 그런 ‘공간’에 더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건축 : 모포시스 ( @morphosisarchitects ) + 해안건축( @haeahn_architecture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서울 강서구 마곡동로 110
서울식물원

“도시에서 랜드마크가 가져야 할 덕목” - 서울 식물원 온실
-
마곡지구 시작점에는 한강에서 뻗어 나온 물줄기가 만들어낸 습지원이 있다. 비옥한 땅에서 자라나는 식생이 동식물의 터전이 되고, 우리에게 삭막한 도심 속 숨통을 틔게 해주는 열린 공간이 되어준다.
-
그 변곡점에 자리한 ‘서울 식물원 온실’은 도시의 정체성에 마침표를 찍으며, 이곳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하는 온실은 마치 꽃을 연상케 한다. 가운데가 높게 솟은 돔 형태의 일반적인 온실과 다르게, 중심부가 오목하고 테두리 부분이 높아지는 그릇 형태를 사용해서 시선은 자연스레 밖을 향하게 한다. 덕분에 크게 자라는 식물이 중심부에만 심어지는 것을 막아, 아기자기한 식물을 다양한 위치에 심을 수 있게 했다.
-
이런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구조는 건물 바깥에서 프레임을 만들었고, 덕분에 내부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있는 중심부를 제외하곤 기둥 하나 없는 넓은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
바닥에서 시작하여 스카이워크를 통해 식물 사이사이를 누비고 탐험하는 경험은 그래서 더욱 극적이다. 공간을 방해하는 구조물 하나 없이, 높게 자란 식물의 잎을 감상하거나 직접 만져볼 수도 있고, 먼 거리에 있는 숲을 감상하며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
-
온실은 마곡지구를 대표하고 정체성에 마침표를 찍는 건물이다 보니, 친환경에 많은 신경을 썼다. 단어의 의미가 무색해지고 아무렇게나 난발하는 다른 건축물과 다르게, 이곳은 오목한 지붕으로 우수를 집수하고 정화하여 조경용수로 재활용하는가 하면, 식물 세포 형상의 구조로 된 지붕에 ETFE를 사용해 가시광선을 유리보다 20% 더 높게 투과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유지관리 비용이 줄어들고 식물은 더 잘 자란다.
-
랜드마크로 인식되는 온실은 그것이 가진 조형 요소에 의해 사람마다 호불호가 크게 갈릴 것으로 생각한다. 누군가는 꽃 한송이를 떠올리며 광활한 자연과 어울린다며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1차원적으로 보이는 건물 형태에 반감을 가질 수 있겠다.
-
하지만 어느 방향이건, 건물의 형태가 인상적이고, 쉽게 눈에 띄며, 한 번 더 뒤돌아보게 만드는 동시에, 친환경 건축의 본보기 또한 보여주니, 서울 식물원 온실은 도시에서 랜드마크가 가져야 할 덕목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건축 : 김찬중 ( @thesystemlab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서울 강서구 마곡동로 161 서울식물원
매일 09:30 - 17:00 (월요일 휴무)
서울서진학교

"특수가 아닌 보편으로"
-
‘특수'라는 단어는 '특별히 다름'이라는 명사이며 평균적인 것과 다른, 일정한 대상 군에만 속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와 반대되는 단어는 '보편'이며, 모든 것에 두루 미치거나 통함, 또는 그런 것이다.
-
‘서울 서진 학교'는 발달장애 학생들을 위한 교육공간으로 계획되었다. 이런 학교가 늘 소개될 때, 서두에 항상 '특수학교'라는 단어가 붙어, 이곳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다니는 '보편 학교'보다 월등히 좋은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
물론 이곳 서진 학교는 대다수의 다른 보편학 교보다 좋은 것은 사실이다. 복도에 색을 다르게 칠해, 비상시 학생들이 안전하게 복도로 나와 대피할 수 있게 했으며, 돌발상황에 대비해 기존 학교보다 2배나 넓은 복도와 그것이 확장되어 만들어진 POD가 한정된 공간의 기능을 넘어 다양한 활동이 일어날 수 있게 했다.
-
이뿐만이 아니다. 기존의 공진초와 신축된 건물을 연결하여 생긴 중정은 단순히 비워놓지 않고, 그 중심에 북카페를 두어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가 이용하는 만남의 광장을 형성했으며, 중정의 외부 공간은 높낮이가 다양한 가구를 배치해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모두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춰 고려된 다양한 부분들이 이곳을 좋게 만들었고, 덕분에 '특수'라는 단어가 붙을 만큼 보편적인 학교와 특별히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은 '특수학교'라 해서 이곳만이 이런 좋은 공간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공간의 구성은 일반적인 학교에 계획되어도 문제 되지 않을 부분이다.
-
지역마다 다르게 설계된 학교가 학생들에게 열등감을 가져다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배워야 하는 학생들을 감옥과 같은 천편일률적인 공간에 12년 동안 그들을 가둬두고 있다. 또 그 이유 하나만으로 발달장애 학생들을 위한 교육공간에 '특수'라는 단어를 붙여, 보편 학교와 구분 짓고, 결을 달리하여 또 한 번 장애인과 일반인을 구분 지으려 한다.
-
때문에 학교는 우리 부모님 세대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공간 구성이며 각자의 개성을 흡수할 수 없는 감옥이며, 몸이 불편한 학생들이 생활하기엔 맞지 않는 공간이다. 미래의 아이들이 다닐 '학교'라는 공간은 '서울 서진 학교'처럼,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춰 계획된 공간, 덕분에 다양한 학생들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 더 나아가 몸이 불편한 학생들도 다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이곳은 오픈하우스 서울을 통해 방문하였으며, 학생들이 이용하는 공간이다 보니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됩니다.
인왕산 숲속쉼터

"가뭄 속 단비"
-
인왕산 중턱에 자리 잡은, 산속의 별장을 생각나게 하는 공간이 있다. 7212번 버스를 타고 윤동주 문학관에서 내려, 시인의 언덕을 지나, 한양도성을 따라 올라가면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경치는 흥미롭다. 청와대도 보이고 경복궁도 보이며 산이 겹쳐 만들어낸 다양한 레이어가 풍경을 풍성하게 만든다. 중간에 바위가 전망대를 만들어 서울의 강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해주니, 그곳까지 오르는 여정은 지겹지 않다.
-
이곳은 원래 군 초소였다. 청와대가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보안과 안전상의 이유로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단계를 두고 북악산, 인왕산을 개방함에 따라 그곳에 있던 군 시설이 철수했고, 그렇게 초소는 지금의 숲속 쉼터로 남게 되었다.
-
건물의 외관을 처음 봤을 때, 형태보단 재료의 디테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철사를 격자형으로 맞춰 바닥과 난간, 지붕에 사용함으로써, 흙먼지 많은 이곳이 언제나 깔끔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건물의 형태가 한눈에 읽히고 유리로 외관이 마감된 쉼터가 더 깔끔하고 정갈하게 보인다. 건물 입구에서 초소의 원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볼 수 있는데, 지금의 모습과 그때의 모습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
정갈하게 마감된 외관을 즐기며 안으로 들어서면, 자욱하게 깔린 나무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다. 벽 하나 없이 유리로 내부를 감싸, 걸리는 선 없이 나무와 산,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내부 마감이 깔끔하고 가구도 결구 방식으로, 나무가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사용해 넓지 않지만 곳곳을 둘러보며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간 한쪽에는 자연과 관련된 책이 있어 잠시 쉬었다 가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다.
-
인왕산, 북악산 일대가 시민에게 개방됨에 따라 한양도성 순성길이 완성되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이제서야 제대로 갖추어진 셈이다.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산에 오른 거라 순성길을 전부 걷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시간이 되어 제대로 산을 오르다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공간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편하게 앉아서 쉴 수 있는 쉼터가 초보 등산객에게는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일 테니까.
-
이곳은 '인왕산 숲속 쉼터'다.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산4-36
매일 10:00 - 17:00 (매주 월요일 휴관)
양천공원 책쉼터

“우리 주변에는 이런 공간이 더 많아져야 한다.”
-
날이 많이 좋아졌다. 꽃샘추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벚꽃은 늘 그래왔듯 금방 피고 졌다. 꽃가루는 사방으로 퍼져 길을 노랗게 물들이는가 하면, 여름밤 내음은 서서히 짙어져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고 있음을 알린다. 날씨 때문인지 갑갑한 집에서 벗어나 밖을 돌아다니며 지금의 날씨를 즐기고 싶지만, 현재 상황이 이를 허락해주지 않는다. 좁은 인도와 그것마저 점유하려는 불법주차, 거리의 벤치는 코로나 거리두기로 없어진 지 오래다.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한강공원까지 가고 싶지는 않다. 나는 집 근처에서 쉴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곳은 카페뿐이어서, 오늘도 어쩔 수 없이 돈을 지불해가며 봄의 날씨를 산다. 하지만 이곳마저 노키즈존으로 분류되어, 특정인들은 발조차 들일 수 없다.
-
‘슬세권’이란 단어가 있다. ‘역세권’에서 ‘역’자를 빼고 ‘슬리퍼’의 ‘슬’자를 결합한 신조어다. 편한 복장으로 각종 여가와 편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 권역을 의미하는데, 서울은 그런 공간이 많지 않다. 특히 공원과 같이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현저하게 적다. 서울숲, 어린이 대공원, 여의도공원처럼 큰 공원은 많지만, 집 앞 편의점처럼 편하게 들렀다 나올 작은 공원이 없다. 그래서 주민들이 모여 함께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가 일어날 수 없고, 부모님은 따로 시간을 내어 동네 밖으로 나가야만 아이들과 야외에서 추억을 쌓을 수 있다.
-
이번에 소개할 공간인 “양천공원 책 쉼터”는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휴식 공간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아파트와 상가 건물 사이에 자리한 ‘양천공원’은 동네의 마당이다. 접근성이 용이하고 공원은 넓지 않아, 어느 방향에서든 쉽게 공원의 중심으로 접근할 수 있다. 그 중심에 비켜선 채로 낮게 깔린 도서관은 동네의 허브 역할을 하여,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릴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
도서관 곳곳에 걸린 사진을 보면 이곳은 동네 주민들이 모여 소통하는 마을 회관이자, 사랑방으로, 때론 강연장으로 공간이 유동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특정 기능만 하는 ‘도서관’이 아닌, ‘쉼터’로 이름 지은 이유이기도 하겠다. 누구나 와서 쉬었다 갈 수 있는 장소로, 무더운 여름엔 더위를 피하고, 매서운 겨울엔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에 모여, 오며 가며 마주치는 주민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기존에 심어져 있는 느티나무와 감나무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건물 일부를 원형으로 덜어내고 공원의 언덕도 살렸다. 덕분에 내부 경험은 특별해져, 경사로를 통해 공원의 풍경을 끊김없이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다. 계단식 좌석은 폴딩도어와 연계하여 유동적으로 공간이 확장된다.
-
필자가 방문했던 때는 평일 오전이었음에도 이미 많은 사람이 공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산책하고 쉼터에 들어와 책도 읽으며 여유를 맘껏 즐기고 있었다. 참 부러운 일이다. 필자가 사는 동네는 공원도 없을뿐더러 좁은 인도에 그마저 침범하려 하는 불법주차로 카페 말곤 오갈 데가 없는데 말이다.
-
코로나 사태로 도심 속 휴식 공간의 부재가 대두되었고 도시 공간에 변화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지금 당장 빼곡한 도시 속에 건물을 덜어내어 공원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책 쉼터처럼 누구나 와서 공간을 즐기고 지금의 날씨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조금씩 생겨난다면, 우리네 도시는 여유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동로 111 양천공원 책쉼터
매일 10:00 - 19:00 (매주 목요일 휴무)
중림창고

"新_古"
-
서울역 뒤편, 충정로역 4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오르막길이 보인다. 그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묘하게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시선이 머무는 그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복도식 주상복합 아파트 '성요셉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형에 순응하며 한 동으로 길게 깔린 건물은 50년을 넘게 이곳을 지키고 있다. 1층에 들어선 방앗간과 카페, 음식점은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사람들로 북적이고 아파트 주민들은 밖으로 나와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눈다. 아파트 앞 골목길이 금세 사랑방으로 변한 것이다.
-
그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어딘가 익숙하지만 낯설고, 그렇다고 이질적이지도 않은 세련된 건물이 성요셉 아파트와 비슷한 제스처로 땅 위에 앉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오늘 소개할 '중림창고'다.
-
세련된 건물에 이름은 왜 '중림창고'일까. 의문에 대한 답은 중림동의 역사에 있다. 서울에서 꽤 잘나갔던 시장인 중림동의 중림시장은 수산물 시장이었고, 중림창고는 중림시장의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허가 판자 건물이었다. 시장이 쇠락하면서 그에 딸린 부속 건물은 동네의 흉물로 자리 잡았지만, 그것을 흉물이라 보는 인식은 이방인의 시선일 뿐,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계를 책임졌던, 이야기가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때문에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이 일대를 변화시키고자 했을 때, 기존의 맥락과 연결되지 않는 건물은 들어설 수 없었다. 그때의 기억을 보존하고자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건물의 형태도 그 당시 중림창고의 모습을 담으려 노력했다. 그래서 그때 당시 창고의 모습과 비교해본다면 피가 섞인 형제를 보는 듯하다.
-
새롭게 탄생한 중림창고는 마치 원래 있던 건물처럼 주변과 잘 어울린다. 성요셉 아파트와 동일하게 가파른 언덕 지형에 순응하면서도 건물을 작은 크기로 분절하여 곳곳에 열린 공간을 만들었다. 건물 사이는 단차를 주어 지형의 단점을 극복했고 골목길과 면한 1층은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하여 개방감을 확보했다. 덕분에 좁고 작은 공간임에도 내부는 넓게 느껴진다. 어떤 곳은 층고가 높고 또 어떤 곳은 층고가 낮은 동시에 내리막길에 위치하여, 같은 2층임에도 다른 공간감과 풍경을 느끼고 볼 수 있다.
-
이곳을 방문하기 전, 사진으로만 건물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왕 비싼 돈 들여 새롭게 지을 거면, 밝고 화려한 건물을 짓는 것이 도시재생에 더 좋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 말이다. 성요셉 아파트와 중림창고 사이의 골목길을 걸어 다녀보면 그때의 생각이 이방인의 시선에서 얼마나 편협된 생각이었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50년의 세월을 견딘 역사 깊은 건물과 앞으로의 역사를 써 내려갈 중림창고가 서로를 존중하며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서울 중구 서소문로6길 33
창신 숭인 채석장전망대

“높은 곳에 서서 숲을 바라보다.”
-
동대문역에서 내려 창신 골목 시장에 들어서면, 처마 같이 길게 뻗은 차양막이 골목을 감싼다. 굽어진 골목길 때문에 제대로 맞물리지 못한 가림막 사이로는 은은한 빛이 들어와 이곳을 더 몽환적으로 바꾼다.
-
상인과 동네 주민이 대화하는 소리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 동대문 시장으로 원단을 나르려 바삐 움직이는 오토바이는 백색 소음이 되어 배경과 함께 깔리고, 식욕을 자극하는 각종 음식 냄새와 볼거리는 이방인으로 방문한 사람들을 여럿 붙잡고 있다.
-
행여나 시간이 지체될까 정신 차리고 시장을 빠져나오지만, 일자로 빼곡히 나열된 주택가와 적막을 깨고 바삐 움직이는 봉제 기계는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이질적인 모습으로 나를 다시 한번 붙잡는다. 그리고 살며시 뒤로 보이는 거무튀튀한 절벽은 창신동이 가진 역사의 켜를 한눈에 보여주니, 동네 자체가 풍성하여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다.
-
창신동은 본래 채석장이었다. 식민 도시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일제는 경성에 대형 건축물을 지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조선은행, 경성역(구 서울역), 경성부청(구 서울시청), 조선총독부를 불과 10년 만에 전부 완공했으며, 이 모두 석조 건축물이었다.
-
이렇게 짧은 시간에 저렇게나 많은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화강암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재료의 근원지가 창신동이었기에, 곳곳을 돌아다녀 보면 어렵지 않게 인공적으로 잘려 나간 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창신동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동시에 해방 이후 서울의 기반을 다지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한국 패션 시장을 이끈 동대문 시장을 필두로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과 그렇게 해서 형성된 시장과 주택가들. 주택가는 절벽을 배경으로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었고 마을 초입엔 시장이 들어서면서 서문에서 말한 공간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
누군가의 시선엔 허름한 주택과 낡은 동네가 보잘 것없는 장소라 치부하며 아파트를 짓기에 좋은 땅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창신 숭인 채석장 전망대’에 올라 이곳을 바라본다면, 창신동을 보존하고 기억하려 했던 불특정 다수의 생각이 옳았음을 깨달을 것이다.
-
전망대는 간결하지만 인상 깊다. 수직선은 엘리베이터, 수평선은 카페와 전망대로 사용되어 건물의 기능은 단순하다. 하지만 두 선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형태와 비로소 볼 수 있는 동네의 경치는 절대 단순하지 않다. 십자가 형태를 가진 전망대는 기둥 하나 없는 캔틸레버 구조를 가진다. 덕분에 관람객은 걸리는 선 하나 없이 창신동 일대를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옥상에서 도로 쪽으로 걸어가면 몸이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
멀리서는 남산타워가 보이고 중간에는 동대문 역사문화공원과 고층 건물이, 가까이는 한양도성도 보여, 한 곳에서 다양한 역사의 켜를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창신 골목 시장과 봉제 거리, 절벽을 뒤로한 채, 건물이 모여 역동적인 동네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귀한 광경이다.
-
낡고 오래되면 무작정 밀고 보는 우리네 건축계 현실 속에서 전망대를 통해 이곳의 가치를 증명하려 했던 소수의 움직임은 헛되지 않았다.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본 덕에, 곳곳에는 창신동만이 보여줄 수 있는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있고, 다른 지역구에서는 이곳을 본보기 삼아 지역재생을 도모하려 할 정도니, 더 부차적인 설명이 필요할까.
-
여러분들도 ‘창신 숭인 채석장 전망대’에 올라 창신동의 매력을 확인해보길 바란다.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서울시 종로구 낙산5길 51
평일 11:00 - 20:00 (월요일 휴무)
주말 10:00 - 22:00
맥심플랜트

"모호한 경계 속 허물어진 진입 장벽"
-
'맥심'이라는 브랜드는 필자가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즐겨 마시던 인스턴트 커피였다. 그 당시엔 경쟁사 제품도 적었을뿐더러 티비에서는 이나영, 김연아가 '인간 맥심'으로 등장해, 중독성 있는 '맥심 송'을 부르고 있으니, 이것 국민 커피로 자리 잡게 된 건 이상하지 않은 결과였다. 커피믹스가 다발로 들어있는 꽉 찬 노란색 박스는 교무실 정수기 옆에 항상 구비되어있는 필수 아이템이었고, 내용물을 물에 타서 노란색 껍데기로 휘젓는 행위는 흔히 말하는 '국룰'이었다.
-
하지만 지금은 정말 다양한 인스턴트 커피를 시중에서 구할 수 있고, 심지어 기계를 사서 사용자의 취향에 맞게 단번에 커피를 내려 마실 수도 있으니, 맥심이 가졌던 그때의 명성은 지금과 같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국민 커피로 자리매김했던 '맥심'도 이제는 변화를 꾀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는지 모른다.
-
이번에 소개할 공간은 우리가 알던 '맥심'의 모습과 다르다. 제품 박스에서 볼 수 있던 노란색은 찾아볼 수 없고, 로고가 아니면 맥심이 전개하는 공간임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다. 메뉴부터 신선하다. 다양한 블랜드 방식으로 사용자 취향에 맞게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건 물론, 친숙한 맥심 커피에 바리스타의 창의성을 더해 새롭게 변신한 커피까지 즐길 수 있다. 기본이 탄탄한 덕에 파생되는 다양한 메뉴가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
건물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지하층이다. 이곳의 지하층은 이태원이 가진 대지의 단점을 잘 극복했다.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언덕 위에 건물을 앉힐 때, 지하층을 묻지 않고 드러내어 내부에서 빛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덕분에 이름만 지하일 뿐, 지상과 지하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로 남아있다. 특히 이곳의 진가는 여름, 겨울보다 봄과 가을이다. 각 층의 문은 폴딩도어로 마감되어 날이 선선한 지금의 날씨와 어울린다. 지금과 같은 날이면 모든 창을 열어젖혀, 마치 외부인 듯 내부인 공간 속에 머물며 휴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
특히나 1층을 열어두어 야외테라스로 공간이 확장되니, 이곳이 곧 도심 속 쉼터요, 이태원 사람들을 모을 허브인 셈이다. 덕분에 어두운색을 가진 외관이 거부감보다는 세련됨으로 다가와 모호한 경계가 진입장벽을 낮추었다. 이곳은 '맥심 플랜트'다.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50
매일 10:00 - 22:00
국립항공박물관

-
인류는 예로부터 공간을 점령하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했다. 더 많은 땅을 가져야 더 많이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더 많은 군주를 다스릴 수 있었으며, 국가의 힘이 세져 공격받지 않을 수 있었다.
땅 위에서는 각종 수단을 동원하여 공간을 통제할 수 있었지만, 뚜렷한 경계가 없고 올곧지 않은 날씨를 가진 하늘의 영역은 언제나 예상을 벗어났다. 이는 곧 하늘이 신의 공간으로 여겨졌고, 새처럼 날 수만 있으면 신과 같은 지위를 얻을 수 있다 믿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경계가 없기에 어디든 도달할 수 있는 건 신만이 가진 초월적 능력이었다.
하늘 공간에 도달할 수 있는 자는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우리네 선조들은 새의 알을 이용해 왕의 출생을 신화화하여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기술이 발전하고 비행력이 갖추어지면서 신의 영역이라 불리던 하늘은 종교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더 멀리, 더 높이, 더 빠르게 날아오르는 기술은 하늘이 가진 특성이 변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외세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비행에 대한 기술적 연구와 개발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
‘국립항공박물관’은 김포국제공항 바로 옆에 자리하여 국가의 위상을 대한민국 국민부터, 한국을 방문하는 전 세계인에게 뽐낼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건물은 쉽게 인지될 수 있는 상징적인 형태로, 도시의 랜드마크로서 그 기능을 다 해야 했다. 비행기 프로펠러와 새의 깃털을 연상케 하는 공간은 용도와 특징을 단번에 알 수 있었고, 국립항공박물관은 도시에서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외부에선 건물의 프로그램을 지레짐작이 가능하지만, 그 누구도 내부에는 대형항공기가 실제 크기로 하늘에 떠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할 거다. 극적으로 변화하는 공간은 원을 만들며 서서히 올라가는 동선을 통해 구체화하고, 그 끝엔 전망대에 올라 실제로 비행하는 항공기의 모습을 보며 공간 경험을 마무리 짓는다. 수많은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강서구 공항동에 박물관이 자리한 덕분에 과거와 현재가 동떨어진 여느 박물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역동적이고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스카이워크를 통해 하늘을 날고 전망대를 통해 높은 곳에서 아래를 관망하며 비행의 욕구를 심어준다. 옛날부터 미지의 공간에 도달하고 싶었던 인간의 욕망이 이제는 어린이들에게 꿈을 꾸게하는 장치로 변화하여, 무모했던 도전이 전 세계가 달려드는 도전이 되고 있다.
건축 : 해안건축( @haeahn_architecture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서울 강서구 하늘길 177
매일 10:00 - 18:00 (월요일 휴무)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서소문역사공원’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을 압도하는 건축물은 없으며 공원 한편에 있는 ‘서소문 현양탑’이 이곳의 역사적 아픔을 보여줄 뿐입니다.
창은 없고 붉은 벽돌의 건물이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는 길을 시작으로 이곳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내리막길을 통해 공간에 들어가는 방식은 세상과 단절시켜주지만 입구까지 이어져 있는 곡선 벽돌 벽은 사람들에게 친근감과 긍정적인 인상을 줍니다.
입구에서부터 급격히 낮아진 층고, 길게 뻗어 있는 복도, 이런 요소들로 인해 더욱 부각되는 십자형 구조물은 사람들을 침묵시키고 복도 사이사이에 있는 전시품들이 이곳의 아픈 역사를 상기시켜줍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이야기를 전개해주는 터널형 천장에 밝은 전시공간을 보게 됩니다. 이곳의 공간 형태가 아픈 역사를 감싸주어 위로해주는 것 같습니다.
각자가 이곳을 경험하면서 받은 감정은 ‘위안의 방(consolation hall)’에서 절정에 다다릅니다.
위안의 방의 지붕은 떠있으며 떠있는 높이가 낮아 외부와 내부를 연결해주면서도 단절시킵니다. 내부에서 나오는 영상을 통해 감정은 극대화되며 검고 어두운 공간이 각자의 생각에 집중하게 해주고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게 해줍니다.
이곳에서 뻗어 나오는 빛줄기는 ‘하늘광장’을 관통하며 사람들을 안내합니다. 어두웠던 지난 공간과는 완전히 상반된 공간을 맞이하게 되고 높은 벽들이 사람들을 압도합니다.
천장은 없고 시야가 확보되어 슬픈 감정이 하늘광장에서 위로를 받듯 홀가분해지는 것 같습니다.
위안의 방에서 극대화되었던 감정은 이곳에서 끝을 맺으며 벽 한쪽에 있는 복도를 따라 지상으로 올라가면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위안의 방과 하늘광장은 서로 대비되지만 가장 중요한 공간이며 관람객을 다른 방식으로 압도하며 추모 공간을 극대화해 줍니다.
아픈 역사를 상기시키고 어루만져 주며 추모를 하게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관람객 스스로 행하게 해줍니다. 즉, 건축가의 개입이 상당히 절제되어있습니다.
지하에서 빛이 들어오게 하는 방식, 공간을 구성한 재료의 디테일, 자연스러운 공간 흐름 등 완성도가 높으며 8년이라는 ‘숙성’ 끝에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이런 공간이 생겼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며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어도 많은 분들이 이곳은 꼭 경험해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KB청춘마루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
우리나라는 유독 카페가 많습니다. 프랜차이즈부터 컨셉이 명확한 카페까지, 그런 카페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해 카페가 서양의 광장 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이런 문화가 지속될 수 없음을 느낍니다.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맘 편히 쉴 수 없게 되었습니다.
-
이런 상황으로 건축이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 왔습니다.
-
우리나라는 특히 공원, 광장과 같은 공공성을 띠는 공간이 적기에 사람들이 카페에 돈을 지불하며 공간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고 고밀도로 건물이 들어선 도심에 없던 광장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
3년 전 새롭게 리모델링된 도심 속 건물 하나가 우리에게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해드릴 공간은 ‘KB 청춘마루’입니다.
-
밖에서 봤을 때 내부와 외부를 구분 짓는 요소는 건물의 강한 인상을 주는 굵은 기둥 밖에 없습니다.
-
덕분에 기둥 사이로 보이는 노란색 계단이 자연스레 의자 역할을 하면서 광장의 역할도 같이 해줍니다.
-
이 계단 광장은 1층에서 시작해 2층, 3층, 옥상까지 이어지며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공연장이 되기도 하고 홍대 거리를 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도 합니다.
-
이 건물은 국민은행 서교점을 청소년 문화시설로 탈바꿈해 사람들에게 공공공간을 돌려주자는 취지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
덕분에 앉아서 쉴 곳 없는 거리에 광장이 생겨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습니다.
-
코로나로 인해 맘 편히 어떤 공간에 머물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KB 청춘마루’처럼 광장과 같은 열린 공간이 더 많아져 조금이나마 집이 아닌 밖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낼 수 있으면 합니다.
-
지금은 외출조차 힘든 시기지만 상황이 진정된다면 이곳은 분명 좋은 공간으로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이런 공간들이 더 많아져 한국의 광장 같은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서울도시건축전시관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 듯”
-
500년 조선왕조를 배경으로 한 대한제국의 출발점인 덕수궁, 서양과 한국 건축 양식을 가지고 있는 성공회 성당(1926, 1996), 옛 경성 부민관(1935)이었던 서울시의회, 지금은 서울 도서관으로 사용되는 경성 부청사(1926)와 그 뒤로는 서울 시청 신청사(2012)가 있는 이곳은 세종대로다. 세종대로는 조선왕조부터 지금까지의 근현대사의 시간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장소다.
-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건물들이 있는 이곳에 새롭게 들어선 건축물은 아주 겸손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명례성지_공간 을 소개하면서 1938년에 지어진 한옥 건축물에 존경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
이곳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을 충분히 드러내고 뽐낼 수 있었음에도 이 건축물은 그러지 않았다. 이미 많은 사람이 눈치를 챘겠지만, 이번에 소개할 공간은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다.
-
덕수궁의 담장 높이만큼만 치켜 올려진 1층만이 이 건물의 외관이며, 나머지는 전부 지하에 묻혀있다. 사실 건물이 앉혀진 대지에는 원래 조선 체신사업회관인 일제가 1937년에 체신국 청사로 만든 건물이 있던 자리다.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그때 그 건물은 덕수궁과 주변의 건물들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있었음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
그런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롭게 지어지는 건축물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았을 때, 지금의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 명확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곳은 너무나 겸손한 태도로 주변 건축물들을 밝게 비춘다.
-
기존 건물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주황색 지붕을 가진 성공회 성당은 어디서나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덕수궁에서 보이는 위압적인 건물, 일제의 잔재가 우리 전통 가옥을 내려다보는 불쾌한 시선이 사라져 도심 속 궁궐에서 더욱 편안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
건물의 옥상이라 할 수 있는 ‘서울 마루’는 시민들에게 돌려주어 낮은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높지 않음에도 360도로 대한제국부터 근현대까지의 시간을 볼 수 있다.
-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라는 이름답게 내부에서는 다양한 전시를 통해 우리 도시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시민들과 공유한다.
-
#명례성지_공간 과 이곳, ‘서울도시건축전시관’ 모두 혼자서 빛나면 주변은 더욱더 어두워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따뜻한 봄을 만끽하며 덕수궁 돌담길에서 산책도 할 겸 잠시 시간을 내어서 이곳을 방문해보길 바란다.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서울 중구 세종대로 119
매일 10:00 - 18:00 입장마감 : 17:00
월요일 휴무 매주 월요일(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플레이스 원 PLACE 1

“기술의 발전은 더 나은 우리네 삶을 위해” - PLACE 1
-
동굴이 집이었던 시절, 원시인들은 제한된 환경에서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환경보다 동굴이 있는 주변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거처를 옮기더라도 강가가 아닌 산속에 들어가 생활해야 했다.
-
기술이 발전하고 나무와 벽돌, 석재로 집을 지을 수 있게 된 사람들은 동굴이 아닌, 강가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쉽게 물을 끌어올 수 있었고, 땅도 비옥하여 수렵 채집이 아닌, 농경, 목축 생활로 한 장소에 오래 머물 수 있었다. 그렇게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형성했고, 마을은 하나의 성을 이루었으며,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의 기틀을 만들었다.
-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더 발전하면서 산업 시대가 도래했다. 철을 대량생산 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인장력에 약한 콘크리트에 철근을 배근하여 다양한 건축적 실험을 해왔고, 그렇게 바닥과 기둥, 계단으로 이루어진 ‘도미노 프레임’이 발표되었다. 자유로운 입면과 평면을 구성할 수 있어, 덕분에 강도 높아진 철근 콘크리트와 그 활용법은 순식간에 널리 활용되었다. 이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고층 빌딩의 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
하지만 콘크리트가 굳으면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한번 굳으면 재활용할 수 없는 건축물은 콘크리트의 수명이 끝나갈 시점인 3-40년 후에, 그 부작용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과정에서 나오는 건설 폐기물은 지구 전체 폐기물의 70%를 차지했으며, 이는 곧 건축계에 또 다른 기술적 발전을 필요로 했다.
-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공법, ‘PC(Precast Concrete) 공법’은 플라스틱처럼 공장에서 콘크리트를 성형해 작업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둥, 바닥, 보와 같은 주요 부재부터, 장식으로 사용되는 콘크리트 타일까지, 자재를 미리 만들어 현장으로 운송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이것은 공기 단축, 공사비 절감, 품질 관리에 용이했다. 롯데월드타워의 상층부는 이 공법을 통해 엘리베이터와 계단 부분의 구조를 해결했으며, 오늘 소개할 공간 또한 이 공법을 활용하여 재료와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
하나은행 별관, ‘PLACE 1’은 안보다 밖이 더 흥미롭다. 3차원 형태의 원형 셀(cell)을 모아 전체 입면을 구성하여,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각인 될 수 있는 평이한 건물 외관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각각의 셀에는 다채로운 예술품으로 구성된 아트 디스크를 설치했고, 비로소 흥미롭게 변화하는 입면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알맞다.
-
PC 공법을 통해 붙여진 외관은 일부가 손상되면 부분 교체가 어려운 기존의 공법과 달리, 부분마다 뜯어내어 교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덕분에 건설 폐기물은 줄어들고, 건물 전체를 철거할 때도 성능만 보장된다면 재활용할 수도 있으니, 이 공법은 주목받는 기술이다.
-
비록 PLACE 1이 리모델링 프로젝트로, 외관에만 PC 공법이 사용되었으나, 더 많은 건물이 주요 부재까지 해당 공법을 사용한 사례가 늘어난다면, 앞으로 바뀔 우리네 공간 변화가 기대된다.
-
기술은 우리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발전했고, 이번에도 틀림없다.
-
리모델링 : 김찬중 ( @thesystemlab )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96길 26 하나은행삼성동
한내지혜의숲한내도서관

“우리 주변엔 이런 곳이 ‘더’ 많아져야 한다.”
-
[내가 사랑한 공간들 - 윤광준]의 책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서울의 명소라 부르는 남산 타워나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123층의 롯데월드타워에 가 본 적이 있는지. 아마도 가 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정작 도시 안에 사는 이들은 명소라는 곳에 별 관심이 없다. 관광객의 차지가 된들 별 불편도 느끼지 못한다.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곳은 자주 드나들고 머물며 시간을 보내는 버스 정류장이나 전철역, 어린이집과 동사무소, 도서관과 우체국, 경찰서와 법원 등이다."
-
이 말에 백번 공감한다. 상경한 지 5년, 군대를 제외하면 3년 동안 서울 이곳저곳을 정말 많이 돌아다녔다. 동네의 음침한 골목길부터 산속 깊은 곳까지 웬만한 곳은 한 번씩 가봤다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 나도 정작 서울의 명소라 불리는 곳은 방문한 적이 없다. 서울을 대표하는 남산타워는 전망대일 뿐이어서, 나에게는 별 의미 없는 건축물이고 롯데타워는 밑에 있는 백화점과 상점을 제외하곤 나와 상관없는 공간들이다.
-
서울의 명소보다 중요한 곳은 우리가 많이 이용하는 공간들이다. 출퇴근길에 마주하는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은 우리 삶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자 시설이며, 학교는 12년 동안 절반 이상을 생활하는 공간이다. 도서관은 우리의 문화생활을 충족시켜 주는 공간이자 시간 날 때 들려 책을 읽고 빌리는 곳이며, 동네에 있는 작은 공원은 산책하기에 좋고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니,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더 중요하고 더 좋아져야 함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이번에 소개할 공간은 좋다. 다른 곳과 비교해봐도 좋다. 노원구 중랑천 앞, 한내 근린공원에 위치한 '한내 도서관'은 외관부터 눈길을 끈다. 집을 형상화한 모습, 그런 집의 형태가 옹기종기 모여 숲을 이루고 있는 외관은 중랑천을 건널 때부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예상대로 내부는 지붕을 따라 튀어나오고 겹치면서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위로 수렴하는 천장 덕분에 답답하지 않고 어긋나게 겹치는 공간 사이로 빛이 쉽게 들어온다. 일부는 비워내어 작은 테라스를 만들었는가 하면, 곳곳에 계단형 열람실을 만들어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도록 했다.
-
이곳을 방문한 아이들은 다양한 공간감을 가진 공간에서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고, 주민들은 산책하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리고 읽으며 쉴 수 있다. 도서관에 비치된 책이 대부분 어린이를 위한 책이다 보니, 성인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은 다른 도서관에 비해 많지 않다. 정해진 부지 내에 높게 짓지 못했던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어른을 위한 공간이 아닌,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어 강박적으로 조용히 해야 하는 다른 도서관과 다르게, 아이들은 뛰어놀고 이야기하며 어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맘껏 공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
이런 곳이 더 많아져 이곳을 경험한 아이들이 후에 성장하여 더 좋고 높은 수준의 공간을 갈망한다면, 앞으로 우리 주변에 더 좋은 공간이 속속히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좋은 공간 속에 자리 잡은 좋은 기억은 그만큼 강렬하다는 것을 나는 믿기 때문이다.
-
설명하다 보니 도서관에만 이야기가 치우쳤지만, 도서관뿐만 아니라 버스 정류장, 지하철, 학교와 같이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시설들이 더 좋아져야 하고 그 수가 더 많아져야 한다. 지금은 너무 부족하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공간을 보는 수준이 높아져 아무 생각 없이, 책임감 없이 지어져 미관을 해치고 좋지 않은 경험을 주는 공간이 적어질 것이며, 반대로 좋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져 '한내 도서관'과 같은 공간이 동네 곳곳에 만들어질 거니깐. 그렇게 입소문이 난 공간은 명소로서 타지역에 있는 사람들도 끌어모아 동네가 활성화되고 좋아지고 성장할 것이다.
-
우리 주변엔 이런 곳이 '더' 많아져야 한다.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서울 노원구 마들로 86
매일 09:00 - 18:00 (매주 일요일 휴무)
구산동도서관마을

“간절한 바람이 현실로”
-
동네와 마을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동네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여러 집이 모여있는 곳이며 마을은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다. 전자는 단지 집들이 모여 있는 것이 끝이라면 후자는 집이 모여 사람들과 교류가 일어나고 있는 느낌이 든다.
-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 이번에 소개할 공간이다. 처음 이 건물의 이름을 봤을 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는데, 바로 '마을'이라는 단어를 건물에 붙인 것이었다. 일정한 부지를 지칭하는 것도 아닌 건물에 이 단어를 쓴 이유가 궁금해졌고 이런 궁금증은 이곳을 돌아다니며, 그리고 곳곳에 전시된 도서관의 탄생 과정을 보며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
좁은 로비, 어수선한 서가 배치, 도서관이라고 하기엔 다소 부족한 좌석. 이 공간의 첫인상이었다. 주변의 건물보다 한참 뒤에 지어진 것에 비해 필요한 실들의 크기와 개수는 턱없이 부족했으며 공간 구성도 신축이라 하기엔 정돈되어 보이지 않았다.
-
그렇다. 이곳은 8채의 주택과 3동의 빌라를 철거하고 보수하여 만들어진 건물이다. 오래된 주택은 철거되어 건물 내부의 열린 광장과 주차장이 되었고, 빌라의 방과 거실은 보수 작업을 거쳐 사무실과 아기자기한 열람실로 탈바꿈했다. 서로 다른 건물을 이어주던 골목길은 도서관의 복도이자 서가가 되어 책을 고르며 이곳의 옛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
사실 이 도서관은 공간뿐만 아니라 도서관의 탄생 배경도 남다르다. 구산동을 돌아다녀 보면 주택가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지만 정작 공원이나 공공건물은 쉽게 볼 수 없다. 이런 불편함을 오랫동안 감내하며 살아온 주민들이 도서관 설립을 위해 직접 서명 운동을 하고, 각종 예산 지원을 받기 위해 여러 활동을 기획하며 실천하는 등. 주민들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결과물이 바로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이었다.
-
덕분에 이곳은 우리가 흔히 보던 도서관이 아닌, 공공시설이 없었던 은평구 구산동에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서로 교류하며 여가를 즐기는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그렇기에 여기는 사람 간의 여러 활동이 일어나는 작은 '마을'이었으며, 그 이유로 단순히 도서관, 동네가 아닌 '마을'이라는 단어가 도서관에 붙여졌다.
-
주민들의 노력으로 탄생한 도서관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탄생 배경이 있었기에, 타인의 시선에 본 이곳의 불편함은 그저 귀여운 어리광에 불과했으며 그들에게는 어느 것과도 맞바꿀 수 없는 개성이자 구산동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
이곳은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이다.
-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
서울특별시 은평구 연서로13길 29-23
평일 : 09:00~22:00
주말 : 09:00~18:00